안동호 곁에있는 얕으막한 와룡산에 올랐다.
소나무 그늘 막에 송이도 벌써 뾰족하게 솟아올랐고, 밤송이도 파릇,
도토리도 토실하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물봉선화 군락지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면, 까치수영 ,초롱꽃이 반겨주던 곳인데,
추석 벌초 탓에 깎여나간 풀잎 더미에서 두엄 내 비릿한 풀 냄새가 풍겨온다.
산은 기계충 앓은 머리처럼 휑하니 군데군데 빈곳 투성이다.
숲이 무성할 땐 모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산 저산 온통 땜빵 자국이다.
특히 와룡산에는 옛날부터 내려온 묏자리가 수없이 자리 잡고 있어,
나무, 바위, 무덤끼리 서로 자리다툼을 하는 것 같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다른 산과는 달리 무연고 묘지조차 이곳에는 없다.
묏자리도 넓고 가지런히 뗏장 자라고 있는걸 보면 관리도 무척 잘하고 있는가
보다.
허물어진 묏자리 하나 보이질 않는다.
아마 양반 동네가 되어서, 여러 문중에서 경쟁하듯 돌보고 있어서 그럴까?
이러다가, 몇 년 후에 산은 온통 봉긋한 무덤 뗏장으로 덮이고 묘비명이나 읽으며
쉬엄쉬엄 등산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와룡산은 산세 또한 아늑하고, 굵은 마사토 지역이라 배수도 잘되어,
땅값보다, 오히려 산소 쓸 산값이 더 비싼 곳이라고 들었다.
향긋한 송이 내 맡으며 잠들고 있는 조상님을 뵈면 뿌듯한 마음도 가질 만 하겠다.
하기사... 송이 자라는 산 한등성이 가지고 있으면,
년 몇 천만 원 정도는 쉽게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웬만한 건물 임대 수익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 위에서는 청설모가 겁 없이 뛰어다닌다.
숲길에는 까투리나, 꺼병이가 쪼르르 튀어 나오고,
산비둘기조차 사람 기척에는 날아가지 않는다.
나무 위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도, 짐짓 제 놀 짓만 하고 있다.
삵괭이, 오소리, 뱀이나 천적이 되련만, 그도 밀렵 탓에 숫자가 많이 줄었나보다.
야생화나 곤충을 찾아 숲길 아닌 곳을 헤매다가는 올무나 덫에 걸리기 십상이라
무척 신경이 쓰인다.
요즈음 송이 철은 더더욱 조심해야만 한다.
자칫하면, 송이 도둑으로 몰려 엄청난 돈을 물어주고 타협해야 하는 일도 생길라.
아예, 배낭은 짊어질 생각도 안하고, 카메라 가방까지도 벗어놓고 오른다.
산주인은 어디에서 숨어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야박한 세상인심이 변한건지, 금값 송이가 탐욕스러운 것인지,
내 산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굴레가 되고 말았다.
인간사 한점 티끌 없이 살기가 어디 쉬우랴?
나도 속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조하며, 송이 하나 꾹 찔러 빼냈다.
송이는 짐짓 못 본체 하지만, 상큼한 솔 향이 베어 나오고,
쫄깃한 그 맛깔스러운 유혹에 한 송이 몰래 찢어 입에 넣으며,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산을 오른다.
가끔은 더덕이나 장뇌삼, 오가피를 다른 산꾼들은 잘도 캐어오지만,
나는 잎새를 보고도 긴가 민가 하며...아직 구별을 못하니,
심마니 노릇하기도 영 글렀나보다.
것뿐이랴, 야생화 이름조차 자꾸 가물가물 헷갈리고 만다.
망초, 벌개미취, 구절초도 영 그게 그것 같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눈빛부터 흐려지고, 총기마저 사라져 간다더니.......나도 별수 없나보다.
멀리 청량산 육육봉을 바라보며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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